[Academia] 생명과 약의 연결고리

생명과 약의 연결고리

약학과 김성훈 교수, 인체라는 복잡계와 약의 상호작용

과학기술의 발달≠모든 문제 해결

2022년 12월 공개된 대화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Chat GPT)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해주는 방식의 챗지피티를 이용해 시험을 치른 결과 미국 로스쿨과 명문 경영대학원(MBA)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한다. 순식간에 코딩도 해주고 논문도 써주며 소설과 음악도 창작해 준다.

드디어 AI가 지구 온난화, 사회 갈등, 불치병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난제들을 손쉽게 척척 해결해 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바둑에서 알파고가 인간을 넘어서더니 급격하게 AI가 우리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고 인류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났으며 자율주행 자동차, 그 너머 우주시대도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과학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과거 어떤 시대보다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2023년 2월 6일 오전 4시 튀르키예에서는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약 5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재민은 200만 명에 이른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습하면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19년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이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 6억 7,600만 명을 감염시켰고 이 중 약 687만 명이 사망했으며 2023년 현재도 아직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은 세계를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네트워크로 묶어 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세계 정세와 질병의 도전에 대한 불안 요소는 증가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문제들이 ‘생명’, ‘약’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첨단 과학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계’ 연구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지진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과 ‘약’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약의 적용 대상인 인체도 위에서 언급한 자연이나 사회 재난과 같이 현대 과학으로는 그 현상을 모두 해석할 수 없는 복잡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복잡계란 다양한 원인들이 상호 역동적이고 복잡하게 얽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시계나 비행기 같은 기계들도 많은 부품들이 매우 복잡하고 정밀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기계라도 인간의 지식과 기술로 창조한 것이기 때문에 예측대로 작동하고 설사 고장이 났다고 해도 설계도에 따라 수리하면 정상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체는 어떠한가? 우리는 아직 각종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생명 시스템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장기가 고장 났다고 해서 시계의 부품들처럼 손쉽게 교체하거나 수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제한적이다. 자동차는 부품들을 분리했다가 다시 합치면 작동하지만 인체는 장기들을 분리했다가 다시 합친다 해도 생명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같이 생로병사를 관장하는 생명의 시스템은 대표적인 복잡계에 해당된다.

생명체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지속적이고 다양한 환경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상호 배타적인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시스템의 안정성과 유연성이 바로 그것이다. 즉 외부 자극에 시스템이 쉽게 변하지 않는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자극이 너무 강하거나 오랜 기간 지속되면 생존을 위해 결국 시스템을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는 유연성도 있어야 한다. 이같이 이율배반적인 두 속성을 동시에 보유하기 위해 인체가 선택한 것이 복잡계이다.

협심증 치료제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복잡계의 예상치 못한 선물

아스피린 이후 가장 획기적인 소염진통제로 평가받던 머크사의 바이옥스는 장기 복용해도 위 출혈이 없으며 피가 잘 굳지 않게 하는 부작용도 없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투여가 18개월 이상 지속되면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부작용으로 많은 환자가 사망했고 결국 판매가 중지되었다. 임산부의 구토 억제제 및 수면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 생성을 억제해 심각한 태아 기형을 유발하여 ‘악마의 약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은 약물이 우리 몸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들을 일으키게 될지 예측하지 못함으로 인해 얻어진 결과이다.

반대로 예측하지 못한 약물의 반응이 새로운 치료의 영역을 열기도 한다. 혈관 확장을 유도하는 약물로서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던 화이자사의 비아그라는 임상 시험 과정에서 남성의 발기부전을 개선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라이프스타일 의약품이라는 새로운 치료제 영역의 개척자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악마의 약물’로 사용 금지되었던 탈리도마이드는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이 승인됐다. 금지된 약물에서 예측하지 못한 효능을 알게 되면서 생명을 구하는 약물로 다시 부활한 것이다.


인체는 2만여 개의 유전자, 그로부터 생성되는 수백만 가지의 단백질과 대사물질, 그리고 60조에 이르는 세포들이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그 생명을 유지한다. 이러한 인체의 시스템에 약이 들어가 어떤 효능과 부작용을 나타낼지 현대의 과학으로는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에 신약개발은 아직도 실패의 확률이 높은 고위험 과학기술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와 반대로 이렇게 개발이 어렵기에 하나의 신약이 창출되면 엄청난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신약개발 능력이 생존과 직결

우리나라는 수출 세계 6위, 경제 규모 세계 10위에 달하는 등 선진국이 생산하는 대부분의 상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독 신약개발에 관해서는 아직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과학의 발명품이라고 불리는 혁신신약은 평균 12년 이상의 개발 기간과 1조 원 이상의 개발 비용이 소요된다. 지난 3년간 전 인류를 패닉 상태로 빠뜨렸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은 국가의 신약개발 능력이 인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 줬다. 이번 팬데믹에서 신약개발에 성공한 기업들은 인류를 구하는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를 챙겼다. 그 사례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는 2020년 50조 원이었던 매출이 2021년 97조 원으로 단 1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자국민 우선주의’라는 이념이 확산됐다. 백신을 만든 국가가 백신을 먼저 독점하는 것이다. 즉 인류의 생존이 달린 위기에서 신약개발 능력은 곧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혁신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고 가는 길이 어렵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제약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멈춰서는 안 된다. 신약개발을 포기하는 나라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외국계 제약 기업에 볼모로 잡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성훈 교수의 저서 『생명과 약의 연결고리』의 일부 내용을 바탕으로 생명 시스템과 약의 관계를 알기 쉽게 풀어서 소개했다. 『생명과 약의 연결고리』에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된 이유 △연예인들이 약물에 중독되는 이유 △약물 내성과 금단현상, 부작용 △미래 맞춤의학 및 신약개발 패러다임 등 약을 통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사례가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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