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고 판로 막혀” 항생제 신약 씨 마른다

(한국일보=김진욱 기자)  입력 2019.12.26 18:46 수정 2019.12.26 19:36

미국 제약회사들이 항생제 개발에서 손을 떼고 있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 포도상구균(MRSA)등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수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수십억달러를 들여 새 약을 개발했다가 판로를 찾지 못해 파산한 제약사들도 속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생명공학 기업인 아카오겐의 사례를 들어 제약업계의 위기를 진단했다. 아카오겐은 지난 15년간 수십억달러를 들여 비뇨기계 감염 치료제 ‘젠드리’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었다. 젠드리는 지난 7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핵심 신약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아카오겐은 이미 4월에 파산했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고 추가 임상실험을 위한 자금도 융통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아카오겐은 실험실 장비를 내다 팔았고 연구진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다제 내성 감염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항생제 ‘제라바’를 생산하는 테트라페이즈도 신약의 판로를 찾지 못해 위기에 직면했다. 기존 약품들보다 성능이 훨씬 개선됐지만 병원들은 2,000달러짜리 제라바를 외면한 채 1달러짜리 기존 복제약을 사용했다.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으로 인한 감염이 증가 추세이지만 항생제 선택의 기준은 여전히 기능보다 가격인 셈이다. 결국 테트라페이즈는 실험실을 폐쇄하고 연구진 40여명을 해고했다.

미국 정부는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 포기가 중장기적으로 공공보건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바이오의학고등연구개발청(BARDA)을 설립해 항생제 내성 세균을 박멸할 수 있는 항생제 개발업체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새 항생제 개발에 평균 26억달러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의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올해 의회는 새로 개발된 항생제를 사용하는 의료기관에 비용을 보전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원칙적으로는 이 법안을 지지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밥 케이시(민주ㆍ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은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해결해야 할 저항이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 대한 재정 지원을 유권자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1년 동안 항생제 내성 세균에 감염된 사람은 280만명에 달하고 이 중 사망자도 3만5,000명이나 된다. 유엔은 항생제 내성 세균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1,000만명이 숨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NYT에 따르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제약사가 1980년대에는 18곳이었지만 지금은 3곳뿐이다. 라이언 시르즈 아카오겐 창업자는 “가만히 앉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원문: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226160132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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