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파이프라인 창고서 쫓겨난 항생제…왜?

(히트뉴스=조광연기자) 승인 2018.05.31 06:47

내성극복 항생신약 공공재로 비축하고 제값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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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30일 GARDP 장 피엘 박사(가운데)초청 세미나를 개최했다. 허경화 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왼쪽)과 임원빈 동아에스티 연구본부 의약화학연구실장(오른쪽).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가 페니실린 발견으로 항생제 개발의 전기를 마련한 이후 개발된 항생제들로 인해 인류가 승기를 잡은 듯 보였던 ‘세균과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균에게 역전 당하고 있다.

‘작은 상처가 곪아터져 죽음을 맞던’ 항생제 없던 시대(Pre-antibiotics era)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인체 면역을 통제해 암세포를 사멸시키고 줄기세포치료제를 만들어내는 연구 개발고도화 시대에 나타난다는 것은 대단한 역설(Paradox)이다.

항생제 신약에 ‘단 세포 세균’이 더 빠르게, 더 지능적으로 ‘내성의 갑옷’을 갈아입는 탓으로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 2050년 1000만명이 내성균 감염으로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암 사망자 820만명, 당뇨기인 사망자 150만명, 교통사고 사망자 120만명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이처럼 암울한 전망보다 더 큰 문제는 내성 획득 세균의 위협을 눈 앞에 두고도 ‘신무기 개발’을 등한시하고 있는 인류의 현실이다. 연구자들은 물론 제약기업들이 ‘엘로라도 행렬’처럼 암 치료제 같은 ‘돈 될성싶은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글로벌 항생제 연구개발 비영리 국제기구(GARDP)’를 출범시켜 R&D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항생제 사용 저감대책’ 등의 예방책이 눈에 띌 뿐 내성균 극복 항생제 개발은 물론 개발 동기를 부여하는 적정 약가, 상시 비축체제 같은 문제가 좀처럼 의제로 테이블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30일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협력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GARDP 장 피엘 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민관상호 협력 협의체(Private Public Partnership)의 필요성, 내성균 극복을 위한 국내 항생제 개발 현황을 짚어본다.

▶ 국내기업, 파이프라인 창고에 항생제 안보여=임원빈 동아에스티 연구본부 의약화학연구실장이 미국 감염질환학회 자료를 인용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1980년 초중반 FDA 승인을 받은 항생제 신약은 16건 가량됐으나 근래 1건 정도로 줄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연구개발 제약사 대부분이 항생제 신약파이프 라인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엔 몇몇 제약사를 제외하면 아예 없는 실정이다. 이는 M&A 등으로 부족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전략을 갖춘 다국적제약사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구개발도 유행을 타 면역항암제, CNS 의약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근래 승인받은 항생제는 2014년 6월 FDA 승인을 받은 동아에스티 시벡스트로, 2015년 3월 식약처 승인을 받은 동화약품 자보란테 등이 있다.

선반에 파이프라인을 올려 놓은 곳은 국내 최초 FDA 신약 팩티브를 개발했던 연구자들이 세운 벤처기업 레고켐바이오(2건, 식약처 임상 2상과 전임상), 크리스탈지노믹스(1건, FDA임상 2상), 인트론바이오(2건, 식약처 임상2상과 전임상) 등이다.

▶ 기업들은 왜, 항생제 개발을 외면하나=2012년 이후 FDA 승인을 받은 새 항생제 가운데 시벡스트로(Sivextro, 2014년)만 국내 허가 승인과 함께 급여까지 인정 받았다. 저박사(ZERBAXA, 2014년)는 국내 허가 승인을 마치고 지난 5월 비급여로 출시하는 한편 하반기 급여 신청할 계획이다. MSD는 “다제내성 그람음성균치료제 옵션이 부족한 한국이 다른 OECD 국가와 견줘 카바페넴 내성률이 높아 저박사가 카바페넴 대체로 내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벡스트로가 판매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는 기업이 받으려는 희망가격보다 급여 가격이 현저히 낮은 탓이다.

기업들이 항생제 개발을 꺼리는 또다른 이유는 급여나 가격 이슈로 비전이 가물가물하는 가운데 항생물질 발견이 쉽지 않고, 감염후 중도 사망하는 등 임상 피험자 모집이 어려우며, 적응증에 부합하는 피험자인지 가려내는 진단도 쉽지 않은 탓이다. 뿐만 아니라 위중한 환자 대상으로 플라시보 임상을 할 수 없는 윤리문제 등 개발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폐렴 적응증 임상시험 중인 시벡스트로만 해도 폐렴을 유발하는 세균이 수도없이 많아 시벡스트로 적응증 관련 세균보유 환자를 피험자로 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상시험 4년차에 목표 피험자 600명을 확보하지 못했다. 개발난도는 높은데, 가격이 낮을 때 기업이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 항생제 개발, 동기부여를 하려면=휴가 다녀와 로또를 맞은 ‘플레밍 박사의 행운’은 항생제 개발에서 더는 재현되지 않을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업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정부와 사회가 내성균에 대항하는 항생제 개발을 ‘공공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약바이오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내성균 발견부터 이에 대응하는 신물질 발견, 임상개발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의 정비 등 연구자 한명이나 기업 한곳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으로 상황이 변모됐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관상호 협력 협의체(Private Public Partnership)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제약바이오 협회 허경화 부회장은 말했다. 내성극복 항생제를 공공재로 인식한다면 바이러스 백신처럼 내성극복 항생제를 지자체, 보건소 등이 항생제를 비축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외국산 신약이든, 국내산 신약이든 등가 처리해야 한다. 약이없는 감염질환에 쓰이는 약이라면 재고 비축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공무원들에게는 매우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내성극복 항생제 같은 신약 공공재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약가를 부여해야 한다. 내성을 극복한 항생제 신약이 내성에 발목잡힌 무력한 항생제를 기준으로 낮은 약가를 받게된다면, 항생제 연구개발에 나설 기업은 없을 것이다.

기업들은 ‘순현재가치(NPV) 평가법을 적용할 경우 신 항생제개발의 경제적 가치는 제로에 근접할 수 있다(ICACC, 2014)’는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 폭리를 취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기업이 최소한 연구개발의 보람은 얻을 수 있는 정도의 보상은 되어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개발 과정서 사회적 개발비용 충당이나, 정부 펀드의 유입, 바이오나 CNS 계열로 몰리는 펀드의 적정한 분배 노력도 민관상호 협력체 등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원문: http://www.hi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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