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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 ‘신약개발-재무부담’ 딜레마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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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승부수] 재무수준 고려한 발빠른 R&D 투자결단이 ‘관건’
그런 중에 좀처럼 변화가 없었던 상위 제약사간 순위변동도 시작됐다. 50년 가까이 1위 자리를 지키던 동아제약이 지주사 전환으로 자리를 내주면서 선두그룹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다. 제약사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순위 탈환을 위한 준비작업에 바쁜 한해를 보냈다.
2014년은 제약사들이 자체 개발한 신약으로 본격적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신약개발능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무여력을 갖추는 것이 승부를 판가름할 전망이다. 신약개발과 재무부담의 딜레마를 넘어서 세계시장을 뒤흔들 토종 제약사의 탄생을 기대해 볼 만한 시점이다.
◇도입품목 판매로 외형 키우기 쉽지만…미래성장동력은 ‘신약개발’
제약사들의 지주사 전환이 잇따르면서 2013년 업계 매출 순위는 크게 변했다. 50년 가까운 기간동안 1위였던 동아제약의 빈자리를 유한양행이 채우면서 새로운 ‘1조 클럽’ 탄생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한양행은 도입품목 판매로 약가인하에 발 빠르게 대응한 덕분에 매출 규모를 크게 늘릴 수 있었다. 2013년에는 창립 역사상 최대 매출액인 93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리베이트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제네릭 시장마저 성장을 멈춰 영업환경이 위축된 상황에서 도입품목으로 대안책을 찾은 셈이다.
대웅제약은 다국적제약사의 신약을 코프로모션(co-promotion) 형태로 판매하며 업계 3위에 올랐다. 신약의 원 개발사인 다국적제약사와 함께 마케팅을 진행하고 판매수수료를 매출로 인식하는 구조다. 판매총액이 아닌 판매수수료를 매출로 인식해 영업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2013년 3분기 기준 상장 제약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7~8% 수준이지만 대웅제약은 12.6%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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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국적제약사의 품목을 도입해 판매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유통망을 확보한 다국적제약사들이 자체적으로 판매에 나서면 도입품목에 의존했던 국내 제약사들은 또 다시 먹거리를 잃게 되고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된 사업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자체 개발 신약을 발굴하는 일이 중요하다. 도입품목 판매나 코프로모션으로 당장 매출 규모는 유지하되 신약개발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평사 관계자는 “약가인하에도 도입품목 판매 등으로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결국 자체 개발 신약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익창출 구조”라며 “재무여력이 있는 제약사들이 R&D 투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약개발 성공 ‘눈앞’…재무부담 줄이기가 ‘관건’
실제로 신약개발에 승부수를 띄워 성과가 가시화된 곳들도 다수다. 지난 5년여 간 신약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결과 글로벌 시장에 도전해볼 만한 신약개발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곳이 한미약품이다. 고혈압 개량신약 아모잘탄은 이미 미국과 아시아 6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바이오 당뇨신약과 차세대 표적 항암제 등 신약 몇 가지도 해외 임상단계에 있다. 당뇨신약 ‘랩스-익스텐딘4(LAPS-Exendin4)’는 미국과 유럽 등 10여 개국에서 임상2상을 앞두고 있다.
LG생명과학은 업계 최대 규모의 R&D 투자를 지속해온 결과 국내 최초 미국 FDA 승인을 얻은 퀴놀론계 항생제 신약 팩티브와 당뇨치료 신약 제미글로 등에서 성과를 얻었다. 매출액의 20% 가까이를 R&D에 투자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아 신약개발능력으로는 업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동아ST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옛 동아제약은 특히 천연물 신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2년 항궤양제 신약 스티렌의 성공을 발판으로 소화불량제 모티리톤 등을 출시해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 대표적인 캐시카우 ‘박카스’가 안정적으로 매출을 낸 덕분에 지난 2006년부터 R&D투자에 박차를 가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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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앞으로 추가적인 R&D 투자를 어떤 방식으로 얼만큼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미 국내 제약사 평균치의 두배 이상 수준으로 R&D 투자를 해왔지만 제약업계 환경변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자금 여력에 있어 한계에 부딪힌 곳이 많다. 성과가 가시화 되기 시작한 신약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R&D 비용을 지출한다면 재무적인 부담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신평사 관계자는 “신약개발은 정부 규제를 비롯한 사업환경 변화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성장의 발판이 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면서 “문제는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대규모 투자 부담이 재무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관계자도 “신약개발에 승부를 건 제약사들은 이미 해외수출을 위한 생산기준인 cGMP에 맞는 설비를 갖추기 위해 지난 10 여년 간 투자를 해왔다”며 “여기에 신약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투자를 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제약사들이 미래 먹거리가 될 신약개발에 성공하려면 R&D 뿐만 아니라 각 사의 재무 여력에 맞는 투자 집행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제약사들이 자본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능력을 안정적인 수준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재무여력을 갖추기 위해 제약사들의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며 “지난달 한미약품이 신약개발을 위한 유상증자 1000억 원 규모에 나선 것처럼 2014년에는 제약사들이 자본시장에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