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암 환자, 생존율 높였다
[인터뷰] 최인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면역치료연구센터 박사
난치성 암으로 분류되는 ‘불응성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서 백혈병세포가 항암제에 내성을 나타내 치료 효과를 보기 힘든 경우를 일컫는다. 치료를 해도 환자의 예후가 매우 불량하고 골수이식을 시행하더라도 대부분의 환자에서 치료효과를 보기가 어려워 치료가 어려운 암 중 대표적인 사례였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환자의 면역세포였다. 암을 치료하기 위한 기존의 기술은 환자로부터 세포를 얻어 항암제를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환자의 면역세포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세포 얻는 ‘반(半)일치 골수이식’
최인표 박사팀은 난치성 암 환자에게 반일치 골수이식 후 자연살해(Natural Killer, NK)세포를 주입할 경우 재발을 줄이고 생존율은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임상실험을 통해 밝혀냈다.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이규형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진행, NK세포를 이용한 난치성 암 효과에 대한 임상 2상 결과, 반일치 골수이식 후 NK세포를 투여할 경우 투여하지 않은 환자그룹에 비해 재발률이 절반 수준으로 낮다는 성과를 얻은 것이다. 환자 생존율은 7배가량 증가됐다.
자연살해세포(이하 NK세포)란 면역체계의 최전방을 방어하는 면역세포를 의미한다. 백혈구의 림프구 속에 존재하는 NK세포는 몸속에 침입한 각종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해 파괴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 일명 ‘자살특공대’로 불리곤 한다. 암 뿐 아니라 자가면역질환 등 각종 난치성 질병과 다른 면역세포 기능조절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연구결과는 골수이식 임상 전문지인 ‘미국골수이식학회지(Biology of Blood and Marrow Transplantation)’ 온라인 판에 발표됐다.
“이번 기술개발은 몇 년 전부터 계속됐어요. NK세포를 어떻게 잘 만드는가, 이것이 핵심이었죠. 지금까지는 환자로부터 NK세포를 얻어 증식하거는 기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만 문제점은 환자로부터 만든 NK세포가 활성이 떨어지거나 원하는 만큼 수를 얻기 힘들다는 점이었죠. 어려움이 많았어요. 우리 연구팀은 줄기세포의 일종인 조혈줄기세포로부터 NK세포를 분화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수만큼 NK세포를 얻을 수 있었죠.”
백혈병 진단이 내려지면 병원에서는 가장 처음 항암제를 투여하는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항암제 치료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반응을 하는 환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항암제에서 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 골수이식 단계로 넘어간다. 이 경우 역시 치료가 되면 다행이지만 재발할 경우는 또 다른 위험이 된다.
“급성인 경우 평균수명이 6개월 정도입니다. 이런 환자에게는 현재로서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어요. 우리 연구팀은 말기 암 중 재발된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시작했습니다. 14명으로 시작했어요. 가장 처음의 목표는 NK세포를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어요. 부작용이나 거부반응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항암 효과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40여 명에게 임상을 적용했어요. 이번에 나온 결과가 바로 그것이죠. 한 그룹은 NK투여를 받은 그룹이고 다른 한 그룹은 투여 받지 않은 그룹이에요.”
투여 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제 생존 여부였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3~5년은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기간을 놓고 봤을 때 NK세포를 투여 받지 않은 사람은 생존율이 10% 미만이었지만 투여 받은 사람의 생존률은 30%를 넘겼다. 평균 5배 정도 이상의 생존률 증가를 확인한 것이다.
“재발률도 NK세포를 투여 받지 않은 사람의 경우 70% 이상이었지만 NK세포를 투여 받은 사람은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어요. NK세포가 환자에게 항암 억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임상적으로 증명한 것이죠. 이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상 성공환자, 말기 암 진단 후 3년 이상 새 생명 얻어
임상의 성공여부도 환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실제로 임상대상이 된 환자들은 6개월 이하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워낙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환자군 중 세포를 뽑아 배양하는 2주 동안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안타까웠죠. 치료제를 맞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거잖아요. 반면 3년 이상 잘 지내고 계신 분도 있어요. 환자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타나지만 많은 분들이 해당 치료제를 통해 건강한 삶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최인표 박사팀의 연구는 암이 걸린 환자의 가족 중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조혈줄기세포를 얻는 방식이다. 다른 케미컬 방식의 항암제와 달리 환자가 생기면 그 즉시 생산에 들어가는 체계인 것이다.
“우리 연구팀은 기존의 케미컬 항암제와 달리 환자로부터 직접 면역세포를 뽑아내 배양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개발해 놓은 후 언제든 투여할 수 있는 기존의 항암제와 달리 환자가 생겼을 때 바로 생산해야 하는 방식인 만큼 연구자들은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 이번 임상 때도 주말․휴일에 관계없이 연구자들은 늘 환자의 스케줄에 맞춰야 했어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면 감당할만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 연구는 10년 이상의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임상만 약 6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단기간에 나오는 연구가 아니었기에 오랜 인내를 요하는 시간이었다.
“현재 백혈병의 최후 치료수단은 골수이식이에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골수이식 단계에서 재발되는 환자가 꽤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반일치 골수이식은 치료의 또 다른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낸 그룹은 없어요. 이번 연구는 면역세포를 통해 암을 억제할 수 있다는 임상적 결과를 선보인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죠. 더불어 백혈병 뿐 아니라 췌장암이나 폐암 등 난치 암으로 분류되는 다른 암들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됐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요하는 연구였지만 그럼에도 보람이 있는 거죠.”
최인표 박사팀의 연구가 성공할 수 있던 것은 당시 타 연구진이 잘 사용하지 않던 줄기세포를 이용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선택했다고 해서 연구과정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분화도 잘 되지 않을뿐더러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빠른 시간 내에 세포가 증식하고 분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암 중에도 생존율이 10~20% 밖에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사망률이 80~90% 에 육박한다는 것이죠. 췌장암, 폐암 등이 바로 그래요. 치료가 되지 않는 암에 대해서도 현재 특별한 약이 없어요. 항암제를 투여해도 이런 암들은 거의 반응을 하지 않거든요. 일부는 수술을 하지만 수술로도 완전히 제거가 되지 않아요. 암이 한 곳에만 있지 않고 몸속에 퍼지거나, 수술로 제거할 수 없는 애매한 부분에 있기도 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고요. 이처럼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면역세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 몸을 스스로 돌아다니며 암 세포를 발견하기 때문이에요. 이번 연구는 ‘완전한 치료제’ 라기 보다 암 치료의 또 하나의 길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어요. 다른 방법들과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인 셈이죠.”
현재 해당 연구는 투자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최인표 박사는 “기업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렵다. 물론 이 연구가 한 번 시작하면 몇 년 씩 걸리는 작업인 만큼 기업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라며 “외국의 경우 우리와 유사하고 수준도 비슷한 세포 치료제를 개발을 하고 있는데 최근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1억 달러 펀딩(funding)도 차츰 시작되는 단계다.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아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 황정은 객원기자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4.1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