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作의 공통점은 디테일… 엄청 꼼꼼한 匠人정신 있어야 나오는 것

[Weekly BIZ] [지식 콘서트] 名作의 공통점은 디테일… 엄청 꼼꼼한 匠人정신 있어야 나오는 것

정리=이위재 기자

입력 : 2014.10.04 03:07

예술인에게 배운다… 유홍준 교수의 삼성 사장단 회의 강연
名作은 디테일이 살아있다 – 단원 김홍도·겸재 정선 작품… 10배 확대해도 데생 정확해
장인은 혹독한 수련이 만든다 – 명필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벼루 10개 뚫는 시간 거친것
모든 것에 최선의 노력으로 끝까지 하려는 정신이 핵심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가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다시 장인 정신을 말한다’는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장인(匠人) 정신이란 무엇인가. 왜 중요한가. 장인 정신은 프로 정신이요 혼이다. 예술, 기술, 학문 그 어느 것이든 장인의 혼이 들어간 것만 성공할 수 있다. 장인 정신을 논하자면 먼저 ‘디테일(detail)’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20세기 최고 건축가 중 하나인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고 말했다. 건축이건 미술이건 음악이건 문학이건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답다는 얘기고, 이는 장인 정신을 끝까지 구현해 이뤄진 결과다.

유홍준 교수는 “모든 것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장인 정신은 결국 ‘노력’이라는 결론으로 도출된다”고 말했다.
 유홍준 교수는 “모든 것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장인 정신은 결국 ‘노력’이라는 결론으로 도출된다”고 말했다.

신(神)은 디테일 안에 있다

국보 68호 고려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아가리가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을 보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여섯 단에 7개씩 42개 원창(圓窓)을 만들고 학을 그려 넣었다. 자세히 보면 원창 안에 있는 학은 위로, 밖에 있는 학 23마리는 아래로 내려간다. 어느 면을 돌려봐도 학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변화가 있다. 질서를 갖고 있으면서 또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창의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보 287호 백제 금동 대향로는 용이 용틀임을 해서 연꽃 봉오리를 입으로 물고, 그 위로 봉황이 날아가는 형상이다. 높이 64㎝ 향로 뚜껑과 몸체 곳곳에 기마 인물상에서부터 5인의 악사까지 100가지 도상이 들어가 있다. 디테일이 장관이다. 향을 피웠을 때 연기는 뚜껑의 산봉우리 뒤 구멍 10개와 봉황새 가슴에 있는 2개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연기가 어떤 모양으로 퍼져 나가는지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고려 불화 중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보면 수월관음이 피부가 드러나고 속옷이 있고 그 위에 흰 사라(紗羅)를 걸치고 있는데, 살과 속옷, 흰 사라가 동시에 표현된다. 요즘으로 따지면 ‘시스루(see through) 패션’인데, 자세히 보면 얇은 선으로 수십만 번 ×자를 긋고, 무수히 많은 육각형 선을 그려 놓으니 멀리서 보면 그것이 흰 사라로 보인다. 그 붓질이 몇십만 번인지 세어보진 못했지만, 이런 ‘영웅적인 참을성’이 있기에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법화경 서사보탑도(寶塔圖)는 받침대부터 금물로 7층 보탑도를 그렸다. 사실은 그린 게 아니라 법화경 7권 전 내용을 글로 쓴 것이다. 지붕골이나 풍경, 서까래 등이 다 글씨로 그림 효과를 냈다. 4.5m 높이 보탑도가 그렇게 나왔다. 글자로 만든 그림만 봐도 끔찍한데, 만들 때 한 글자 쓰고 세 번 절했다고 한다.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답기 때문에 확대해서 보면 더 멋지다.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은 작은 편화(片畵)조차 10배를 확대해도 감동적이다. 반면 이류 화가들 그림은 확대하면 데생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감동이 떨어진다.

1 고려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2 수월관음도. 3 달항아리.
 1 고려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2 수월관음도. 3 달항아리.

대교약졸(大巧若拙)

장인이 꼼꼼한 기교뿐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서 무심한 경지에 가는 것이다. 노자는 이를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고 해석했다. 큰 재주는 졸해 보인다, 영어로 얘기하면 ‘Great mastership is like foolish.’ 큰 재주는 재주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그 속에 재주가 들어 있는 것이다.

추사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 했다. 잘됐는지 못됐는지 계산이 안 되는 것, 잘되고 못되고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달항아리가 가진 아름다움은 완벽한 원이 아니고 일그러진 것 같지만, 너그럽고 손맛이 있고, 여백이 있고,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대교약졸에 있다.

불완전성. 그것이 불완전해서 불완전하거나 미숙해서 미숙한 것이 아니라는 것, 완벽한 것에는 오히려 우리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백이 없는데, 어딘가 관객도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여백까지 주는 더 높은 차원의 미학이라는 게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온조왕 15년에 지은 왕궁의 미감(美感)을 ‘검소하되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되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았다(儉而不陋, 華而不侈)’고 서술했다. 이게 한국 장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미(美) 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선 헌종도 창덕궁 낙선재를 건축할 때 단청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명작은 장인이 존중되는 시절에 나온다

백제시대는 장인에 대한 대접이 남달랐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비 은팔찌에는 다리(多利)라는 장인 서명이 새겨져 있다. 왕비 팔찌에 장인 자필 서명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존경심이 있었던 시대다. 기와를 잘 구워내면 와박사(瓦博士)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장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신라 성덕대왕 신종 비천상 양옆에도 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 8명 이름과 관직, 주종 기술자 4명의 직책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명품, 명작이라는 호칭을 붙일 만한 최고의 작품은 이처럼 장인이 존중되는 시절에 나왔다.

불국사 석굴암은 신라시대 당시 국무총리라 할 수 있는 김대성이 25년간 만든 것이다. 전권과 모든 편의를 다 주고서 만들라고 하니까 그런 명작이 나왔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하라고 할 때 장인 정신이 나오는 법이다.

기술자들에게 무조건 장인 정신 가지라고 한다고 해서 갖춰지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장인 정신을 받쳐주고, 그 장인들에게 그와 같은 대접을 할 수 있을 적에 명작이 나오는 법이다.

일본은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있으면 그것으로 존경한다. 일본의 성산인 히예산(枇杷山) 비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조우일우 차즉국보(照于一隅 此則國寶)’. 오직 한 자리만 비추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나라의 보배로 삼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에선 지금도 도공은 14대·15대까지 가고, 우산 잘 만드는 집도 몇 대를 내려가고, 단팥죽 잘 만드는 집도 4대째 내려간다.

장인은 혹독한 수련의 산물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독특한 수련과 연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참을성 있게 끈질기게 배워서 완전히 몸에 익히는 과정이 없으면 안 된다.

유럽은 중세부터 길드(guild·동업조합) 시스템을 갖췄다. 길드는 아틀리에(atelier) 또는 워크숍(workshop)의 연합이다. 화가는 아틀리에이고 조각은 워크숍인데, 이것을 가지려면 마스터(master)가 돼야 한다. 마스터가 되려면 도제(apprentice), 직인(journeyman)을 거쳐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10년 동안 도제 수업을 받고 직인이 되면 밖에 나가서 활동할 수 있다. 직인을 벗어나 마스터가 되려면 자신의 작품을 길드에 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에서 떨어지면 마스터 자격을 못 받는다. 합격했을 때 길드에 냈던 그 작품을 ‘마스터피스(masterpiece)’라고 불렀다. ‘masterpiece’가 ‘명작’이 된 유래다.

추사체는 아무나 쓰는 엉망진창 글씨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점은 이 자율적인 글씨를 들여오기 전 벼루 10개를 밑창 내고, 붓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드는 수련을 했다는 점이다. 때로는 치밀함의 극한까지 가야 스스럼없는 그런 멋을 구사할 수도 있다.

추사체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이라고 부른다. 고전으로 들어가서 새것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들국화의 전인권이 자신의 창법을 설명하면서 “창법의 비결은 따로 배운 게 아니라, 우리 집에 있는 2000편의 음반이었다”고 하더라. 이런 게 입고출신이다. 추사는 팔뚝에 역대의 명 비문 309개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 법도를 지키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개성적인 글씨가 나온 것이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박물관에 가보라. 피카소가 얼마나 사실적인 그림을 잘 그렸는지 알 수 있다. 14세 때 그린 그림들을 봐도 찬탄이 절로 나온다. 그랬으니까 나중에 괴물 같은 여자들을 그려도 다 멋있다고 하게 된 거다. 장인적 수련과 연찬이 있은 다음에 개성을 추구한 것이다.

추사는 ‘아무리 구천구백구십구분까지 이르렀다 해도 나머지 일분만은 원만하게 성취하기 어렵다. 이 마지막 일분은 웬만한 인력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력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고 술회했다. 지금 우리는 2% 부족하다고 떠들고 있는데, 추사는 0.01% 부족하다고 난리를 친다.

모든 사람이 장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인 정신은 가질 수 있다. 무엇이든 끝까지 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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