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상 의학상] ‘단백질 합성효소 연구의 대가’ 서울대 김성훈 교수
▲ 김성훈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있는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입니다. 개별적으로 발전된 학문들은 다양성이 극대화된 사회에서 서로 힘이 되는 동반자를 찾고 새로운 융합의 길을 개척해나갑니다. 현대사회의 삶 역시 이와 마찬가지인데요. ‘수명 100세 시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질병과 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단백질 합성효소(ARS, aminoacy1-tRNA synthetase)에 대한 연구를 통해 건강한 인류의 미래를 꿈꾸는 의과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2015년 호암의학상 수상자인 김성훈 교수입니다. 그를 만난 곳은 수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위치한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 김교수는 여전히 이곳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단백질 합성효소 연구에 탐닉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큰 키와 훈훈한 외모를 지닌 김성훈 교수
단백질 합성효소에 대한 김성훈 교수의 연구는 25년 전 MIT 재학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한 과학계의 관심이 지대했던 시절이었어요.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후 이 지도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지요. 유전자의 근간은 단백질이기에 자연스럽게 단백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에게는 필연적인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단백질 합성효소는 유전자의 암호를 단백질로 해독만 해주는 효소였습니다. 김교수는 단백질의 합성이 유전자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라고 말하면서 생명의 제반 활동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생체구조의 연계성이 바탕이 되는 것이 맞는데 단백질의 단독적인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되려 이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의문의 시발점에서 그가 중점을 둔 부분은 단백질 합성효소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이었는데요. 20개의 아미노산이 서로 조율을 통해 단백질을 생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단백질 간의 상호 작용은 불가피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백질 간의 대화를 연구하는 것이 주요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선 그간의 연구에 대한 자신만의 명확한 당위성이 녹아 있었습니다.
▲ 강의 시작부터 끝까지 연구에 대한 열성을 놓지 않았던 김성훈 교수
김성훈 교수는 과학계의 시대적 요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명과학은 현대사회의 중요한 추세라고 생각해요. 단백질 합성효소들 간의 대화에 대한 연구는 전반적인 생체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필연적인 과제이죠. 20여 개의 단백질 합성효소 네트워크를 이해하면 수백 만개의 단백질 네트워크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니까 좀 더 근간이 되는 부분을 연구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김성훈 교수의 연구는 단백질이란 요소가 인체를 이해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합리적인 표본 집단이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김교수의 연구성과는 암 억제 기능을 지닌 AIMP3/P18 단백질과 AIMP2/P38의 발견입니다. 그 중 AIMP3/P18은 원래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효소 옆에 혹처럼 붙어 있다는 특징 외에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성훈 교수의 연구를 통해 AIMP3/P18이 대표적인 암 유발 인자인 P53을 제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더불어 이런 생체 단백질 합성효소가 암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물론 단백질 합성효소들이 세포 내에서 신호를 주고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교수는 “AIMP3/P18 단백질의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생체질환, 노화, 줄기세포 사멸과 같은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하는 겁니다. 손상된 AIMP3/P18 단백질을 얼마나 잘 회생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와 AIMP3/P18로 이뤄진 기존의 방어막을 얼마나 온전하게 유지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핵심이죠”라고 밝히며 연구의 주안점을 밝혔습니다.
▲ “더 많은 질병을 치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요. 그게 저의 사명입니다”
김성훈 교수의 연구를 통해 암과 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분명 진취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계기를 암 하나를 치료하기 보다는 더 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암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다른 영역의 질병이 있어요. 암이 세포가 계속 증가하면서 생기는 질병이라면 반대로 세포가 죽으면서 생기는 질병들이 있죠.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이나 면역 질환 등 암과 무관하지 않은 여러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기를 바라면서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에서부터 과학의 가치 찾아야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생명과학 분야는 중요한 학문의 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분야 최고의 의과학도가 바라보는 미래가 궁금해졌습니다. 김교수는 가장 중요한 점을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꼽았는데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오래 살고 싶다면 그에 맞는 합당한 이유를 생각하며 건강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죠. 과학도 이에 맞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후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질병이 생기기 이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기술과 치료법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수반된 삶이 이어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김성훈 교수의 말은 올바른 삶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 김성훈 교수는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한 제자들과의 소통을 즐긴다.
‘의과학도’ 김성훈 교수의 평소 생각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사명감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그의 말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직업 윤리의식 역시 매우 확고했습니다. “저는 연구윤리와 생명윤리 이 두 측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구윤리의 경우 과학자의 길로 들어섰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 잘못된 방법을 택하지 않고 초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명윤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우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아요. 어떤 경우든 생명의 가치는 늘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교수의 대단한 업적 속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획일성에 대한 반항이 지금의 김성훈을 만들다
이처럼 천상 과학자였을 것만 같은 김성훈 교수의 과거는 어땠을까요? 그는 스스로를 ‘반항아’라고 회고했습니다. 학창 시절 획일화된 질서와 강요되는 규칙에 대해 김성훈 교수는 늘 의문과 회의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틀과 의식 아래 뭉쳐지는 것이 싫었다는 그는 이러한 성격이 과학도의 길로 들어서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과학은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희망이자 행복이었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이 나에게 주는 자유로움이 좋았어요. 저는 자연만큼 창의적인 존재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을 따라가면 제 스스로가 창의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과학자들의 위인전을 보면서 느꼈던, 한 사람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영감의 중요성이 그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하는데요. 획일성에 대한 반항도 이로부터 비롯됐고 지금 그의 연구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김성훈 교수의 말에서는 그만의 강한 개성이 느껴졌습니다.
▲ “생명체 각자의 정체성이 없다면 의미가 없어요. 그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생명체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설령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이 소수의 길일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갔으면 좋겠어요. 다수에 속해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내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나의 길을 가는 겁니다”
같은 길만 고집하는 청춘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이처럼 김성훈 교수는 확고한 자기 신념을 토대로 20여 년의 세월 동안 연구에 매진해왔습니다. 늘 현재진행형인 그의 삶에 찾아온 호암상은 어떤 의미일까? 김성훈 교수는 의외로 덤덤한 모습을 보였는데요. “과학자가 상을 받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 때문도 아니죠. 도리어 이렇게 상을 받게 되면 스스로나 사회적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분명 좋은 점도 있죠. 이 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앞으로 계속될 연구의 긍정적인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오랜 시간 연구와 함께 살아온 그에게 조심스럽게 초심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초심은 더 진해집니다. 그게 저를 이끄는 힘이기도 하죠”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김성훈 교수의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언제나 그랬듯 늘 발전해나갈 것입니다.
글, 사진 삼성그룹 대학생 열정기자단 도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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