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남극점에서 64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눈 덮인 허허벌판. 꽁꽁 얼어붙은 남극의 평원을 스치는 차가운 산들바람에, 시커먼 얼음구멍 주위에서 버티고 있는 과학자들의 코와 귀는 이미 마비된 지 오래다. 구멍에서 나온 마지막 몇 미터의 케이블을 감아올리자, 권양기(드럼에 와이어 로프를 감아, 짐을 오르내리게 하는 장치)에서는 얼음조각이 튀며 탁탁 소리를 낸다. 멸균복을 입은 두 명의 과학자들이 케이블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야구방망이 길이의 실린더를 들여다보기 위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그들은 망치로 얼음을 조금씩 제거하고, 드라이어로 실린더의 일부를 가열한다. “다 됐나요?” 권양기를 조작하던 엔지니어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