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프리미엄 헬스케어=신찬옥 기자] 2017.11.01
■ 치료 넘어 ‘웰니스’로 진화하는 건강검진
바야흐로 ‘건강검진의 계절’이다. 지난달부터 직장인 건강검진이 시작됐고, 1년 중 두 달 정도 남은 이맘때 건강을 점검하려는 개인들도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10명 중 4명은 만성질환을 하나 이상 앓고 있다. 의사와 상담할 때는 잘 관리하겠노라 다짐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방법을 몰라 난감하다.
암수술 등 생사의 기로에 섰던 사람들조차 회복 후에는 까맣게 잊고 음주나 흡연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물며 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말만으로 욕망을 억누르며 자기 관리를 하기란 매우 어렵다.
◆ 유전체 분석 검사 그 후의 건강 관리
유전체 분석도 마찬가지다. 가족력이 걱정돼 의료기관을 통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3대가 유전체 분석을 받았다고 하자. ‘특정 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으니, 예방을 위해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 운동은 어떤 종류를 해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병원이나 의사 입장에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어도, 수가도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설이나 장비, 인력 등의 문제로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작년부터는 인터넷 쇼핑을 하듯 누구나 클릭으로 유전체 분석 검사를 구매할 수 있는 ‘DTC(Direct to consumer)’ 서비스가 허용됐다. 유전체 분석의 저변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항목이 워낙 제한적이어서 시장은 1년 이상 제자리걸음이다. 10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검사를 받아도, 알 수 있는 정보는 체질량 지수, 카페인 대사, 혈압, 혈당, 피부 노화, 피부 탄력, 색소 침착, 비타민C 농도, 탈모, 모발 굵기 등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DTC 서비스를 하는 유전체 분석기업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더 도움 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진의 조언을 받아 구체적인 솔루션을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소비자 기대를 채우기는 역부족”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유전체분석기업협의회는 “고객들이 정말 알고 싶어 하는 정보들은 규제에 막혀 있다. 무조건 규제를 풀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규제를 ‘합리화’해 달라는 것”이라며 정부에 꾸준히 규제 완화를 건의해왔다.
◆ 맞춤 예방관리로 진화한다
대한종합건강관리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검진 시장 규모는 4조원을 훌쩍 넘는다. 검진 이후 추가로 이용하게 되는 의료비용이 4조원에서 최대 14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도 적극 홍보에 나서면서 검진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년마다 고지되는 국가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은 매년 1300만명이 넘는다. 건강검진기관도 증가 추세다. 대한종합건강관리학회가 201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검진기관은 꾸준히 늘어 총 1만8357곳에 달했고, 이 중 일반검진기관은 1만5683곳, 종합검진기관은 2674곳이 운영 중이었다.
예방의학 시대를 맞아 검진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몰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전체 분석과의 접목이다. 일상 생활 데이터와 유전체 분석 정보를 함께 분석해 의미 있는 데이터를 도출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맞춤 관리를 제공한다. 수시로 병원을 찾아 상담하고,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고, 동기부여를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작은 병·의원들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 관리는 이미 정부가 동네 병·의원에 수가를 적용해주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 모바일 헬스케어 등 관련산업 급성장
세계적으로 건강 관리의 흐름은 치료 위주의 메디컬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웰니스(wellness)로 영역을 넓힌 지 오래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과 해피니스(happiness) 혹은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사회적인 건강까지 종합적으로 추구하는 개념이다. 항노화 및 개인 맞춤의학, 건강기능식품 등 신체를 가꾸는 산업은 물론 명상이나 관광 등 정신건강을 위한 시장까지 광범위하게 아우른다. 스탠퍼드 국제연구소는 올해 세계 웰니스산업 시장 규모를 6785억달러(약 763조3125억원)로 전망한 바 있다.
새로운 시장도 열린다. 스마트폰이 일상 생활의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요한 도구로 부각되면서 모바일 헬스케어 산업이 본격 꽃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이어트·만성질환 관리 애플리케이션 ‘눔(noom)’이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 당뇨 예방프로그램으로 선정되고, 닥터 다이어리가 당뇨환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쇼핑몰까지 론칭하는 등 다양한 헬스케어 앱이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타고난 유전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 관리가 가능해지므로, 건강기능식품과 맞춤 화장품 시장 등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종류의 비타민을 조합해 나만의 비타민을 제조하거나, 유전체별로 좋아할 만한 와인 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다.
보험사 등 금융권의 움직임도 주목해볼 만하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가입자가 건강해지면 보험료를 낮춰주는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건강 증진형 상품의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지금도 ‘건강 할인 특약’을 판매하는데, 흡연 여부와 혈압·당뇨 수치 정상 판단 등으로 건강 상태가 양호한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할인해준다. 그러나 이 특약에 가입하려면 별도로 검진을 받아야 하고 상관없는 의료기록까지 보험사에 제공해야 해 가입률이 저조했다.
◆ “당신의 건강 관리 응원할게요.”
전 세계 의료진과 제약사들은 ‘복약 순응도(compliance)’를 높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복약 순응도란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가 정확하게 복용하고,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전문의료인의 충고나 지시를 따르는 정도를 말한다.
예방의학 및 정밀의료 시대에는 약 복용 외에 일상습관까지 의료진의 처방과 지시에 따라 행동하도록 환자를 움직이는 것이 관건이다. 해법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넛지(Nudge)’로 설명할 수 있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의미이지만, 세일러 교수는 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새로 정의했다. 건강 관리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눔의 코치는 영양과 상담학을 활용해 사용자의 체중 감량이나 만성질환 관리를 돕는다. 상담할 때에도 바로 답을 주지 않고, 여러 질문을 통해 스스로 대답하게 함으로써 욕망을 절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같은 추세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접목되면서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간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지금 왜 간식을 먹고 싶을까요? 오늘 섭취한 칼로리가 2000㎉가 넘는데 후회하지 않을까요?’라는 코치의 메신저나 스마트폰 메시지가 뜨는 식이다. 모바일 기기와 인공지능이 사용자에 대해 공부하면서 엄청난 데이터를 쌓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인 눔 차장은 “매일 코치와 고객이 주고받는 엄청난 양의 대화가 향후 우리의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이어트와 만성질환 관리 외에 다른 질병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비즈니스 플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손꼽히는 미래학자인 존 헨리 클리핑거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 교수는 “스마트폰과 구글, 아마존이 내놓은 알렉사가 당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인공지능은 머지않아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