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55)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 분자의학바이오제약학과 교수는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 개척자다. 암 정복을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비유한 그는 정상에 오르는 새로운 길, 알려지지 않은 루트를 개발하려고 한다. 제약 강국들이 개척해 놓은 루트를 따라 정상을 정복하는 편한 길을 버리고 신약개발에 나선 그의 험난한 여정에 최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암 전이를 막는 새로운 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암 전이를 막는 원리를 찾아내고 거기에 작용하는 물질을 발견한 것은 세계적으로 그의 연구단이 처음이다. 물론 국내에서는 아예 신약개발의 선례 자체가 없다.
그의 도전은 새로운 루트를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루트를 찾아내는 방식에서도 전대미문의 시도를 하고 있다.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바이오콘·Medical Bioconvergence Research Center)’이란 그의 연구단 명칭이 말해주듯 그는 기존의 신약개발 방식을 뿌리째 뒤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했고 세계 바이오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모함에 가까운 그의 도전은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그가 우리 과학계의 구조적인 문제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한 결과여서 더욱 값지다. 지난 19일 그 아름다운 도전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대 약학대학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교수님이 단장을 맡고 있는 바이오콘이 최근 암세포 전이와 관련,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개발의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세계 최초로 암 전이를 촉진하는 물질과 원리(신기전: new-mechanism)를 발견했고, 이를 억제하는 신약 후보물질(약물 선도물질)을 찾아냈다는 겁니다. 항암제를 개발하는 모든 연구자나 제약사, 개발자들이 암 전이 물질을 찾기를 원합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가 전이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전이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고 지금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백 건이 연구 중이지만 아직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저희가 발견한 원리와 물질로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한 군데도 없고, 아마 연구하는 학자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신약을 전문용어로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형이라고 합니다. ‘퍼스트 인 클래스’는 대한민국 역사에 없었습니다. 제약사가 ‘퍼스트 인 클래스’를 만들 수 있으면 초특급 제약회사라고 하는데 이제 우리도 그런 시도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둘째는 이번에 우리 팀이 시도한 연구개발 방식입니다. 3년간 이번 연구를 이끌어온 바이오콘이란 연구단은 기존의 신약개발 시스템이나 메커니즘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입니다. 통상의 신약개발 순서를 무시하고 각 단계의 주체들이 동시에 연구개발에 참여해 12∼15년씩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고 위험 부담도 줄이려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이번에 개발한 암 전이 방지 메커니즘과 물질에 대해 좀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연구단은 지난해 7월 암세포에서 KRS라는 효소가 과도하게 발현하고 그중 일부는 세포막으로 이동한 뒤 ‘라미닌 수용체’와 결합해 암세포의 전이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구단은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KRS가 세포막으로 이동해 라미닌 수용체와 결합하지 못하도록 구조를 변형시키는 기능을 하는 선도물질을 찾아낸 것입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필립 샤프를 비롯한 12명의 매사추세츠공대(MIT) 석학들이 2011년 1월 ‘바이오 융합이 분자세포생물학의 발견과 인간게놈지도 완성에 이어 제3의 바이오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오콘 같은 신약개발 플랫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최초여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이오 융합이라는 것은 바이오 연구에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은 물론 연구의 단계도 섞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약개발은 연구단계와 전(前)임상·임상 등의 개발단계가 있는데 각각 6년씩 12년 정도가 걸립니다. 연구단계에서 소위 항암제를 개발해야겠다는 목표를 정하면 암을 어떻게 잡을까를 고민합니다. 즉 암의 어떤 작용점을 공략해서 치료를 해보겠다는 타깃을 정하는 겁니다.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루트는 무척 많습니다. 신약개발이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에베레스트산 등반 루트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루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퍼스트 인 클래스’와 ‘베스트 인 클래스’입니다. 알려진 루트를 가장 빨리 가는 ‘베스트 인 클래스’도 의미가 있고 우리도 이미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퍼스트 인 클래스’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루트를 뚫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가 따르고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제약회사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이오콘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퍼스트 인 클래스’를 학교가 뚫어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겁니다. 신약개발은 통상 학교, 기업, 병원이 순차적으로 연구, 개발, 임상을 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학교에서 타깃을 찾아 거기에 작용하는 약물 후보물질을 발견한 뒤 이를 기업에 제공합니다. 약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기업은 이 후보물질을 다양하게 가공해서 보다 뛰어난 효능의 약물을 만든 뒤 동물실험 등 전임상을 거칩니다. 그렇게 전임상을 거친 약물은 병원으로 넘겨집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임상 디자인을 해 3단계 임상시험을 거칩니다. 기존 신약개발의 경우 학교는 약물 후보물질에 대한 논문을 내고 기업에 넘겨주면 손을 텁니다. 기업이 신약을 개발하든 포기하든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실패할 확률도 높고 그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듭니다. 특히 임상단계까지 와서 실패하면 그 손실이 수백 억 원에서 수천 억 원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학교가 제약업계에 우리는 이런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해당 연구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찾아 연구단계에서부터 참여하게 합니다. 또 관심 있는 병원의 임상의사들도 함께 참여해 어떻게 개발하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사전에 점검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초기부터 같이 일을 하면 순차적으로 진행하다 후반부에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말씀하는 것만 들어도 대단히 효율적인데 전 세계적으로 이 같은 시도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이런 과정은 보통 연구단계나 한 연구소에서도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타깃을 정하고 루트를 발견해 약물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단계에서도 여러 분야의 여러 연구팀들이 참여합니다. 그런데 팀별로 연구의 진도나 수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여러 분야의 연구팀들이 함께 연구를 할 경우 누가 주도권을 쥘지, 누구 명의로 연구 성과를 발표할지도 문제가 됩니다. 연구단계에서도 이런데 산업이나 병원단계로 가면 이해관계가 더 첨예해집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이해관계가 있고 병원은 병원대로 자기 논리가 있습니다. 이론이나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외국에서 이런 플랫폼이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발표한 논문에도 35명이 이름을 올렸다고 하던데 과거에는 그런 사례가 없었습니까.
“없었죠. 왜냐하면 연구원들이 논문을 쓸 경우 소속 연구기관은 논문의 임팩트 수준을 저자 수로 나눠 각 연구원들에게 점수를 부여합니다. 연구자들은 그 점수로 먹고삽니다. 그래서 아무리 임팩트가 높은 연구를 해도 35명으로 나누면 아주 작은 점수를 받게 되죠. 지난해 우리 과가 꼴찌를 했습니다. 제가 외국의 유명한 과학잡지에 논문도 발표했지만 점수는 D를 받았습니다. 참여 연구자 수로 나누다 보면 소수점 이하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바이오콘은 점수를 포기하고 30명이든 50명이든 빅스토리를 가지고 연구에 뛰어듭니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이거 아니라도 충분히 먹고살 능력이 있으니까 대의를 위해 십시일반합시다’며 지속적으로 설득을 했습니다. 사실 1년에 100억 원을 쓰면 작은 연구과제가 아닙니다. 국가가 큰돈을 투자할 때는 그 의미에 맞는 일을 해서 나라에 도움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을 한 거죠. 그런 분위기를 잡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이제 연구에 참여하는 분들이 바이오콘의 진정성을 이해하십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저도 놀랐습니다.”
―35명의 연구원들은 어떤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입니까.
“각 기관 소속 책임연구원만 10명에 이릅니다. 소속된 기관도 고려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서울대, 연세대, 하버드대, 삼성의료원 등 제가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른 논문들에도 최소 10명 이상이 참여할 것 같습니다.”
―바이오콘의 연구개발 플랫폼에 따르면 이미 개발단계에서 제약회사가 참여했겠군요.
“저희가 초기 물질을 유한양행에 넘긴 게 3년 전입니다. 당시 유한양행이 ‘퍼스트 인 클래스’ 만드는 회사가 한번 돼봐야겠다는 의욕에 불탔던 때입니다. 유한양행은 해당 물질을 가져가서 지난 2년 6개월 동안 무려 2000개의 화합물을 만들었습니다. 약이 되려면 혈관에서 안정감 있게 돌아가고 동시에 원하는 곳에 잘 날아가야 합니다. 이를 약물 최적화 과정이라고 하는데 그걸 위해 무려 2000개의 화합물을 만든 겁니다. 그 결과 우리 연구소가 발견한 초기 물질에 비해 50배 정도 개선된 물질을 찾아내 이번에 논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목표한 신약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유한양행 측은 올해 말 최종 후보물질을 선언한다고 합니다. 후보물질을 확정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임상으로 가겠다는 거죠. 그다음부터는 정말 살 떨리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유한양행 측은 약물 최적화에 실패하면 후보물질을 우리 연구단에게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곳에서 이어받아 계속 연구개발을 해야겠죠. 신약개발을 할 때는 보통 쓰레기통에 3번은 들어간다고 합니다. 약물 최적화에 성공하면 6년간 동물을 상대로 전임상에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선 기간보다 돈이 더 큰 문제입니다. 연구단계에는 30억∼40억 원이 들어갔지만 전임상에서는 1년에 30억∼40억 원이 듭니다. 이어 임상단계로 가면 1상에서만도 연간 수백억 원이 들고 3상에서는 수백억 원은 기본이고 그 이상이 듭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제약회사 규모로는 신약개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출이 수백억 원인 회사가 대부분인데 불가능한 거죠.”
―신약개발에 통상 1조 원이 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1조 원은 과거 이야기고 지금은 거의 5조 원대의 돈이 듭니다. 실패가 그만큼 많아졌고 임상에서 환자를 충원하는 비용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초기단계에서 오류를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바이오콘의 신약개발 플랫폼이 잘 작동하면 신약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겠군요.
“사실 지금 우리는 신약개발에 1조 원도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5조 원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정부가 신약개발을 육성산업 대상에서 아예 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다급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세계적 제약회사 최고경영자(CEO)나 대규모 연구소 소장들도 신약개발의 비효율성을 잘 알고 있고 비용을 줄일 여지가 많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비용을 높게 잡는 것은 제약 강대국들이 신약개발에 대한 진입장벽을 쌓으려는 것 같습니다. 5조 원이나 들어간다고 하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 연구개발을 아예 포기하고 그냥 수입해서 팔아먹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약개발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면 세계적 규모의 제약회사들이 우릴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번 신약개발이 성공하면 엄청난 경제적, 산업적 효과가 기대됩니다.
“통상 신약은 1년 매출 1조 원이 기준입니다. 거대 제약회사들은 이런 규모 이하의 신약은 잘 개발하지 않습니다. 신약개발의 손익분기점이 연간 매출 1조 원인 셈입니다. 그런데 신약이 무서운 것은 수명이 보통 20년은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조 원이 1조 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대표적 스토리입니다.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리는 글리벡은 원래 여러 제약회사를 거쳐 노바티스에 이르기까지 쓰레기통을 여러 차례 들어갔다 나왔다 했습니다. 백혈병 시장이 작으니까 포기하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노바티스가 ‘한 사람이라도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좋은 취지로 개발을 했는데 대박이 났습니다. 지금은 적용 분야가 계속 늘면서 연간 최소 7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박카스의 경우 약도 아닌데 동아제약을 40년간 먹여살렸습니다. 신약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도권을 잡으면 한 사회를 먹여살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유한양행이 과연 임상 3상까지 간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운이 따른다면 임상 2상 정도에는 대규모 제약회사에 파는 게 상례입니다. 임상 2상 단계에서 소규모 임상 효과만 봐도 수백억 원대의 계약이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 제약산업의 현실을 감안하면 신약개발을 완성하기는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임상 2상까지만 가도 개발된 약물을 팔아서 투자액을 회수하고 수십년 동안 로열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임상 2상에서 효과를 보면 매출의 5∼10% 로열티를 받으니까 매출을 연간 1조 원으로 상정하면 로열티만 매년 1000억 원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바이오텍은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특수산업입니다. 돈으로만 계산하면 바이오텍은 휴대전화 사업과 비교해 훨씬 어려운 사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바이오텍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바이오텍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바이오텍은 결국 자신들에게 혜택으로 돌아올 산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적 체력 자체가 바이오텍을 뒷받침할 수 없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자본은 충분합니다. 문제는 인식입니다. 사실 연간 매출 1조 원대 기업에서 연간 1000억 원만 신약개발에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화이자가 회사 규모가 비슷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화이자는 약만 만들고 삼성전자는 250개의 제품을 만듭니다. 외국의 글로벌 제약회사 중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재벌사는 없습니다. 바이오는 특수한 산업입니다. 자동차, 휴대전화, 화장품 등과 같이 손익을 따지는 방식으로는 바이오산업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재벌들이 신약개발을 한다고 매스컴에서 발표했다가 3년 만에 중단하는 일을 십수년간 반복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룹 내 여러 계열사 간에 어느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는지 비교하게 되면 신약개발에 계속 투자를 하기 어렵죠.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신약개발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작지만 순수 제약사들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기초연구 분야의 역량 있는 분들에게 재벌들이 잉여자본을 과감하게 투자한다면 노벨상이든 신약개발이든 모두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바이오 분야에서 기초연구와 산업이 기형적인 구조를 띠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군요.
“제가 기초과학을 연구하다가 중계연구를 하게 된 것은 다른 산업 분야와 제약산업을 비교하다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제약회사 중 세계 100위권에 드는 기업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산업 분야에서는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기업들이 많은데 바이오 분야는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이처럼 산업적으로 바이오 분야가 취약한 데 비해 기초과학에서 뛰어난 학자들은 대부분 바이오 관련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실리는 국내 과학자 논문 중 절반 이상이 바이오 분야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대에서 창의선도 교수를 8명 선정했는데 이 중 6명이 바이오 관련 교수였습니다. 사실 관련 산업이 든든해야 해당 기초연구가 힘을 받는데 뛰어난 연구성과를 거두더라도 그 아이디어를 쓸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국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외국에 가면 그곳에서는 뭔가 문제가 있어서 왔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기술 유출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국내에서 바이오산업이 활성화돼 강한 생태계가 형성돼야 기초연구도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미래창조과학부의 글로벌프런티어사업에 선정돼 연간 10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 외 어떤 연구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 연구단은 지난 3년을 포함해 9년 동안 암 치료라는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를 새로운 루트를 20개 뚫겠다고 정부에 약속했습니다. 즉 20여 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암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암 치료가 제일 어려워 암 치료제를 개발하다보면 각종 질환에 대한 것들이 파생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연구원 과정을 마친 뒤 귀국을 고민했던 당시에는 상황이 더욱 열악했을 텐데 어떻게 귀국을 결심했습니까.
“사실 그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귀국하면 연구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의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던 일본인 동료가 제 고민을 듣더니 ‘왜 꼭 당신이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당신이 한국에 가서 연구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면 다음 세대가 연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서글프면서 동시에 굉장히 창피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과학을 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반성을 했고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귀국해보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선배 교수님들이 실험기재라고 달랑 배양접시 10개를 주셨고 연구실은 장마만 오면 곰팡이로 가득 찼습니다. 명색이 바이오 연구실인데. 그래서 대출을 받아서 연구실을 부쉈습니다. 그리고 선배 교수님들에게 혼날까봐 방학 때 미국으로 갔습니다. 이후 3년간 연구비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거지 사이언스’를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지내다보니 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MIT에서 제게 조언을 해줬던 일본인 친구가 있는 일본 대학에 연구교수로 갔습니다. 그러고는 대학생 마인드로 돌아가서 학생들과 같이 걸레질하면서 3개월간 지금의 바이오콘의 전신이 되는 연구방식을 구상했습니다.”